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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노트/관리학

리더에게 필요한 '용기(fortitude)'란 무엇인가

필부지용(匹夫之勇)을 부리지 말아라

 

 

주변을 둘러보면 능력은 뛰어난데 치욕을 견디지 못하는 부류가 있다. 이들은 무시를 당하거나 조금이라도 불이익을 당할 것 같으면, 즉시 표정이 변하고 험한 소리를 퍼붓곤 한다. 이들에게 용기란 곧 자존심과 인정을 지키는 일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조직의 하부에 있을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조직의 관리자급으로 올라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들은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집단의 이익보다 자신의 감정에 치우칠 가능성이 높다.

 

<출처 : 요코하마 미쓰테루 전략 삼국지>

 

공자(孔子)는 이러한 용기를 '포호빙하'(暴虎馮河 -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고, 황하를 타고 건너려는 무모함)라고 말하며 경멸하였다. 논어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나온다.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여쭈었다. "선생님께서 삼군을 통솔하신다면(=총사령관)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맨손으로 범을 잡고 맨몸으로 황하를 건너려다 죽어도 후회가 없는 사람과는 나는 함께 하지 않겠다. 반드시 일을 대함에 신중하게 하고, 계획을 잘 세워 일을 이루는 사람과 함께 하겠다."

子路曰: "子行三軍, 則誰與?" 子曰: "暴虎馮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

『논어論語』 제7편 술이(述而)

 

공자는 제자인 자로(子路 - 공자의 제자 중 가장 용맹스럽고, 성격이 급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와의 대화에서 관리자는 일을 꾸밀 때 신중함과 계획이 우선되어야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은연중에 장군 직책에 자신이 어울릴 거라는 기대를 내비치는 자로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맹자 또한 전국시대 제나라 선왕과의 대화에서 리더의 용기는 필부의 것과는 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왕께서는 사소한 용기를 좋아하지 마십시오. 칼을 어루만지고 노려보면서 '저 녀석이 어떻게 감히 나를 당해내겠는가?'라고 하는 것은 보통 사람의 용기일 뿐으로 겨우 한 사람만을 대적할 수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는 크게 발휘하십시오."

對曰: "王請無好小勇. 夫撫劍疾視曰, '彼惡 敢當我哉', 此匹大之勇, 敵一人者也 王請大之."

『맹자孟子』 제3장 2. 양혜왕하(梁惠王下)

 

리더가 지녀야 할 용기는 결코 가벼운 개념이 아니다. 이러한 용기는 때에 따라 비겁하게 보일 수도 있다. 제갈량의 마지막 북벌로 유명한 오장원에서의 제갈량과 사마의의 일화는 대의를 위한 리더의 용기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당시 제갈량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조위와 최후의 결전을 벌이고 있었고, 당시 위나라 총사령관은 사마의였다. 늘 군량 문제가 촉나라의 아킬레스건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있던 사마의는 요격을 하지 않고 진중에서 수비적인 입장만 취하고 있었다. 다급해진 제갈량은 사마의를 불러들이기 위해 위나라 군중에 다음과 같은 서신과 함께 여인의 옷을 보낸다.

"사마의 그대는 대장군으로서 중원의 군사를 이끌고 와서 있는 힘을 다해 싸워서 자웅을 겨루려고 하지 않고, 굴을 파고 땅 구덩이에 틀어박혀 칼과 화살을 피하려고만 하니 실로 아낙네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중략) 만약 부끄러운 마음이 남아있고 남자의 배포가 있다면 빨리 날짜를 정해 싸움터로 나오라"

 

내용인즉슨, 대장이나 되어서 영채에 숨어 싸움을 피하는 것은 여인과 같은 행동이니 남자답게 한판 붙자는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위 군에겐 치욕이었고, 위나라 군영은 크게 동요했다. 그러나 사마의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제갈량의 격장법(激將法)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결국 활로를 찾지 못한 촉군은 장기전에 돌입하게 되고 제갈량의 수명이 다해 패퇴하게 된다.

 

<출처 : 드라마 신삼국>

대의를 위해 인내할 줄 알았던 사마의는 삼국지의 마지막 승리자가 될 자격이 있었다.

 

당시 사마의는 촉보다 훨씬 큰 대국의 총사령관이었다. 적의 조롱보다 무서운 것은 부하장수들의 신망은 물론이고 세상사람들의 비웃음거리였을지도 모른다. 사소한 감정을 억누르고 대의를 위해 중심을 지킬 수 있는 것은 결코 소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 중에도 이와 같은 용기를 보여준 사례가 있다. 정유재란이 일어나기 전, 부산으로 침공하는 적을 막으라는 조정의 출천 명령을 거역한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하게 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가토 기요마사 이끄는 왜군이 부산을 침략해 조선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럼 어째서 이순신은 조정의 출정 명령에 응하지 않은 걸까?

 

첫 번째는 부산 앞바다가 물살도 세고 전라도처럼 섬이 많지 않아 배를 정박할 곳이 마땅치 않아, 포위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이런 불리한 지형에서 적의 첩보만 믿고 대군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는 실록의 기록을 보면, 조정에서 이순신에게 출정 명령을 지시한 날짜가 13일로 보이는데, 13일이면 이미 왜군이 조선에 상륙을 한 직후였다. 평소 치밀하고 신중했던 이순신의 성격이라면 이런 전황을 몰랐을 리 없을 테고, 무리하게 출병을 하지 않는 것이 전략적으로 옳은 선택이라 보았던 것이다.

 

『손자병법』의 지형(地形) 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장수는 전선에서 필승의 확신이 서면, 군주가 싸우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더라도 반드시 싸워야 한다. 그리고 필승의 확신이 서지 않으면 군주가 싸우라는 명령을 내렸더라도 반드시 싸우지 않아야 한다."

故戰道必勝, 主曰無戰, 必戰可也, 戰道不勝, 主曰必戰, 無戰可也.

"그러므로 장수는 승리하면서도 명예를 좇지 않으며, 패배할 때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오로지 백성의 안전을 꾀하고, 나라의 이익에 부합되는 결과만을 추구할 따름이다."

故進不求名, 退不避罪, 惟民是保, 而利合於主, 國之寶也.

 

이순신 장군은 국가의 명운이 자신에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무인으로써 명욕보다 실리와 대의를 선택했고 결국 백의종군을 당하는 치욕을 겪었다. 그런 그가 복귀 후(칠천량 해전으로 전 수군이 궤멸된 후) 남은 12척의 배로 330척이나 되는 일본군의 함대를 상대로 격전을 벌여 승리한 것은 지휘자가 갖춰야 할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나아가기만 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무턱대고 돌진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리더는 대국적 흐름을 인지하고 조직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키를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설령 그것이 단기에 불이익을 감내해야 하는 치욕스러운 경험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예기禮記』에 따르면 '용기란 일을 처리함에 있어 과감하게 결단하는 것(臨事而屢斷勇也.)'이라 말한다. 결국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분명히 파악하는 것, 그리고 이에 따라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리더의 용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