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경제로 보는 인플레이션의 역사
전쟁은 기본적으로 엄청난 자금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전쟁을 겪었던 국가들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게 된다. 1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통계에 따르면 영국은 독일보다 지출이 많았다. 1918년 도매 물가는 1913년과 비교해 볼 때 독일보다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에서 훨씬 더 상승했다. 그런데도 전후 다른 국가들은 독일처럼 무자비한 초인플레이션을 겪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처럼 독일의 경제를 붕괴시킨 초인플레이션 현상은 단지 전후 배상금 문제 때문만은 아니였다.(이는 당연히 독일측의 주장이다) 여기에는 금융과 관련된 조금 더 복잡한 사건들이 숨어있다.
연합국이 전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투자자들에게 채권을 발행했던 것과는 다르게 독일은 정부 재정을 통해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독일 투자자들이 당시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금융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기 때문) 이는 결국 전쟁기간 동안 독일이 중앙은행을 통해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단기간에 시장에 통화를 유통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패전 후 독일이 엄청난 배상금을 채무로 떠안게 되자, 낙관적 전망을 내리기 힘들었던 외부 투자자들은 자금을 빼서 더 안정적인 국가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당시 독일은 분노한 국민들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노조와의 임금 협상 등, 공적 자금을 무분별하게 지출하고 있었다.
세금은 부족하고 지출은 과도한 상황이 맞물리면서, 1919년과 1920년 독일은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문제는 당시 독일의 경제 정책 담당관들은 독일의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을 안정화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독일의 통화 가치가 급락하면 연합국이 배상금 문제를 다시 손보리라는 의도가 깔려 있던 것)
또한 독일은 통화 가치가 떨어지면 결국 독일의 제품이 미국이나 영국의 상품보다 저렴해지기 때문에 수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라 믿었다. 실제로 이 같은 생각은 먹혀들어 마르크화의 하락 덕분에 독일은 어느 정도 수출 경기를 부양 받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이 놓친 것이 하나 있었다. 1920~1922년 동안 인플레이션이 유도한 경제 붐은 미국과 영국이 전후 불황을 야기해 수출보다 수입을 훨씬 더 자극했던 것이다. 독일이 내심 기대했던 경제적 압력은 무산되었다. 당시 이를 지켜보던 프랑스는 불성실한 독일의 태도에 무력으로라도 배상금을 받아내겠다며 루크 지방을 점령하기도 했다. 독일인들은 이에 파업으로 맞섰고, 정부는 여기에 다시 지폐를 찍어내는 방법으로 자금을 마련했다.
그 이후의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다. 독일은 유례가 없는 초인플레이션을 경험하면서 경제는 붕괴됐다. 그리고 이는 히틀러의 등장과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다.
※ 내부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현재 동아시아 3국이 펼치고 있는 정책이 같은 제조업 강국이었던 독일이 전후에 실행했던 경제 정책과 상당히 유사하다.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 상황,
1. 금리 역전(→ 해외 자금의 이탈)
2. 환율의 가파른 상승(→ 상품의 대외 무역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자국 통화 절하 정책)
3. 정부의 지속적인 재정지출 (→ 부채 탕감을 위한 화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