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에세이/경제와 산업

전세사는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

M.동방불패 2023. 12. 19.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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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는 서민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전세를 서민들을 위한 복지제도 정도로 생각한다. 당장 집을 살 수 없는 사람이라도 어느 정도의 여윳돈만 있다면 임대료 없이 거주할 집을 얻어 목돈을 쟁여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나쁘지 않은 제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세의 본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한참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세는 세입자에게 절대 유리한 제도가 아니다. 


이 기만적인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우선 자본주의라는 경제 시스템을 알아야 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이 나뉘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생산수단의 소유'를 들었다. 생산수단이 없는 노동자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착취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국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종속되고 계층은 굳어지게 된다. 


현대의 금융제도에서 생산수단은 공장이나 토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본(capital)'은 그 자체로 생산수단이 된다. 이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은행의 존재다.(은행의 기본적인 업무는 대부업이다.) 전 세계에서 평균 소득이 가장 높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미국 월스트리트라는 점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세는 집주인에게 일정금액을 맡겨놓으면 세입자가 계약기간동안 임대료 없이 집에서 거주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이를 바꿔말하면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은행이 아닌 개인(세입자)에게 주택을 담보로 자금을 대여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생겨난 돈은 집주인에게 자본, 곧 생산수단이 된다. 이들은 이 자본을 다른 상품(일반적으로는 부동산)에 재투자해 자산을 늘린다. 엄밀하게 말하면 전세란 일종의 사금융인 셈이다.(전세라는 건 애초에 이런식의 부동산 갭투자를 위해 태어난 상품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경기가 성장한다고 가정할 때 집주인은 세입자의 자본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불린다. 호황기에 부동산 가격은 늘 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입자가 돈을 돌려받을 때가 되면 경기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으로 그만큼 집값이 오른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같은 구조에서 집값은 늘 소득보다 가파르게 오르기 때문에 전세금을 돌려받은 세입자가 구매할 수 있는 집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만약 여기서 세입자가 전세자금대출까지 받았다면 대출이자와 오른 물가로 인해 세입자는 오히려 자산의 가치가 떨어진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를 사는 사람은 표면적으로 돈은 그대로인 것처럼 보여도 실제적인 부(富)를 늘리는데는 늘 실패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괜찮을 수도 있다. 전세 만기가 돌아오면 어쨌든 세입자는 원금을 돌려받기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money와 capital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실망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심각한 문제는 경기침체기에 벌어진다. 경제는 호황과 불황을 반복한다. 따라서 은행은 신용, 담보 등 여러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해둔다. 그러나 전세는 다르다. 집값이 떨어지면 그 리스크를 고스란히 세입자가 감당해야 한다. 부동산이라는 특성상 불황기에 매매가격이 떨어지면 판매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원금에 대한 회수율 자체가 급속도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세입자는 돈을 떼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울며 겨자먹기로 깡통 전세가 되어버린 집을 떠안게 될 수 밖에 없다. 이건 결국 부동산 투기꾼들의 노름판에 세입자가 자금을 대주는 꼴이나 다름 없다.(그것도 대출 이자까지 내가면서!) 웃기는 건 집주인이 돈을 벌어도 세입자에게는 콩고물 하나 떨어지지 않는다. 


※ 전세제도가 존재하는 한 정부는 집값 상승의 주범인 투기세력을 결코 막을 수 없다. 온 국민이 공범인데 건전한 부동산 매매가 될리가 없지 않은가. 더구나 정부는 이런 기만적인 시스템을 폐지할 수 조차 없다. 전세는 서민들이 더욱 원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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