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유행은 왜 끝나지 않을까
내가 요즘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아니, 님 T세요?'
아마 이 말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당신은 공감능력이 떨어지는군요.', '냉정하시네요.' '피도 눈물도 없는 놈.'
정말 그럴까? 나는 과거 전문 기관에서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상담사 분은 내가 공감능력이 딱히 낮지는 않다고 하셨다.
얼마 전에는 한 여성분이 나보고 MBTI가 뭐냐고 물었다. 내가 'INT..인가 그럴껄요. 근데 볼때마다 바껴서..' 라고 말하자 '그래요? 이상하네. 아무리봐도 E 같은데.' 라고 하더니, 'I는 아닌데.. 아~ 훈련된 외향성이시구나.' 라는게 아닌가.
이런 이상한 대화가 오가는 것만 봐도 MBTI는 크게 신뢰할만한 지표가 못 된다. 검사의 결과가 매우 가변적이고 주관성을 띄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MBTI는 개인의 성격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다. 성격이라는 건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기질을 말한다. 예를 들어 물리적 고통에 반응하는 척도, 또는 동일한 자극에 반응하는 민감도 등은 기질이라 볼 수 있다.
이런 기질을 파악하는 성격 테스트는 따로 있다. 대표적으로 TCI 검사와 같은 분석 툴이다. 이런 개인적 기질은 일생동안 대체로 변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MBTI는 다르다. MBTI에서 말하는 지표는 우리가 '어디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지'에 대한 정보를 나타낸다.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일종의 의식적 작업이다. 다시 말해 이런 활동은 '자아'에 대한 탐구이자 반영이다.
이건 내가 키우는 고양이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집 고양이는 계획적(J)이지도, 뭔가를 분석(T)하지도 않는다.(사실 이같은 성향은 성격적 특성이라기 보다 전두엽을 얼마나 사용하는지에 따라 달려있다.) 그러나 성격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소 예민한 편이지만 호기심과 애교가 많고 먹는 것을 좋아한다.
고양이에게도 자아가 있을까? 물론 있을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어느정도 지능이 발달한 동물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알아본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동물들도 의식을 질서있게 정리하는 작업, 그러니까 자아를 해석하는 작업을 구체적으로 하지는 못한다.
주의는 고정된 상태가 아니다. 내향적인 사람도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때는 얼마든지 외향적으로 바뀐다. 우리 뇌는 계산 등 분석적인 작업을 할 때 공감능력이 떨어지지만 반대로 가까운 사람들과 정서적인 활동을 할 때는 구태여 분석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MBTI는 이러한 인간의 복잡성(comlpex)을 몇 가지 특성으로 단순화 시킨다.
뇌가 불안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인간은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귀신을 무서워 하는 이유 처럼) 그래서 뇌는 '패턴'이라는 것을 개발했다. 즉, 형식, 개념화는 항상 통제력을 발휘하고 인간의 진화적 결과이다.
우리는 경험과 학습을 통해 이론을 만들고, 이름을 붙여 세계를 일종의 '틀'에 집어 넣는다. 이러한 기준이 있다면 불안감을 상쇄시킬 수 있다.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MBTI는 인간을 몇 가지 틀에 집어 넣는다. '너(나)는 외향적인 사람이야'라는 기준을 제시할 때 불확실성은 사라진다. 이처럼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몇 가지 틀로 끼워 맞춤으로써 우리 뇌는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MBTI가 깊숙히 자리 잡은 이유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 관계에 대한 불안함,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의 부재는 현재 젊은 세대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다.
자아를 탐색하기 위해서는 다채로운 경험과 도전, 그리고 깊은 사색과 노력(독서나 예술적 작업 등)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고차원적 의식 작업은 때로는 매우 지루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그러나 MBTI는 이러한 고민을 덜어준다. 어려운 성찰의 작업이나 삶의 구체적 경험이 없이도 타인과 나를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MBTI를 통한 관계맺기는 우리의 존재론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