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노트/협상전략

전세를 뒤집는 협상의 기술 '배트나(BATNA)'란 무엇인가?

M.동방불패 2018. 10. 1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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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학의 기본 배트나(BATNA)

협상 자리에서 상대방이 고수인지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다음의 질문을 해보는 것이다. '혹시 배트나가 뭔지 아세요?' 만약 답을 모르거나 얼버무린다면 상대방은 협상에 대한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배트나가 뭐길래 이 단어를 모르면 협상의 하수가 되는 걸까? 협상학에 입문하면 반드시 배우는 가장 기초적인 개념이 바로 '배트나(BATNA)'다. BATNA란 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의 약자로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 취할 수 있는 최상의 대안'을 말한다. 

만약 당신이 집을 사기 위해 부동산을 돌아다닌다고 가정해보자. 집을 보다 보면 중개업자들은 '이 집, 지금이 최저가다', '언젠가 이 동네 개발된다.' 같은 늘 비슷한 소리를 한다. 그런데 한 중개업자가 "거참 이상하네. 오늘따라 이 집 보는 분이 많네요. 오전에만 두 분이 보고 가셨어요."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집을 보는 당신의 마음은 어떨까? 왠지 모르게 초조해질 것이다.

 

<부동산 중개인은 항상 자신이 소개한 집이 인기가 많다고 말한다>

 

중개업자가 진짜 선수라면 여기서 한 단계 더 나간다. 당신이 집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는데, 중개업자의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린다. (사실은 알람을 맞춰놓은 것일 수도 있다.) 중개업자는 급히 전화를 받는 척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 오전에 보고 가신 분이군요? 집이 마음에 드신다고요? 그런데 죄송하지만 가격 조정은 안 됩니다. 그래 봤자 500만 원 차이인데, 그냥 하시죠. 아니면 사모님과 조금 더 상의해보시고 최종적으로 결정하셔서 전화 주세요."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당신의 마음은 어떨까? 아마 굉장히 조급해 질 것이다. 집을 파는 사람 입장에서 나 말고도 다른 대안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손님 입장에선 웬만한 건 양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배트나의 힘은 매우 강력해서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도록 도와준다.

과거 서울시와 청계천 상인들과의 (청계천 복원 사업) 협상은 배트나의 중요성을 보여준 사례다. 사실 청계천 복원 사업은 기획 초기 단계에서 엎어질 수도 있었다. 기존에 그곳에 터를 잡고 있었던 상인들의 반대로 서울시가 협상에 난항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청계천 복원 사업은 어떻게 착공이 가능했을까?

서울시는 2002년 7월, 미관상 좋지 않고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노후된 청계고가를 철거하고 청계천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2만여 노점 상인들은 상권 소멸, 교통대란, 홍수의 위험 등을 제기하며 결렬이 반대했다. 서울시는 노점 상인들에게 황학동 만물시장과 문정동 물류 단지 등에 점포 부지를 제공하고 업종 전환도지원하겠다는 등의 유인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노점 상인들은 10조 원의 영업 손실 보상금만을 요구하며 맞섰다.

이때 서울시에게는 공사비 이외에는 어떠한 추가 예산도 없었다. 10조 원의 보상금을 요구하는 노점 상인들과 한 푼의 보상금도 지급할 수 없는 서울시. 한마디로 양측의 포지션이 평행선을 달리는, 협상 타결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때 서울시가 내놓은 무기는 다름 아닌 '강력한 배트나'였다. 서울시의 배트나는 바로 '고가 보수공사'라는 카드였다. 서울시의 협상 대표는 상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최근 청계고가의 안전을 감사한 결과, 청계고가가 위험하다는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만약 이번 협상이 결렬된다면 서울시 입장에선 앞으로 2년간 고가도로 보수공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 시민과 상인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하는 일이니 적극 협조해주셔야 합니다. 또 이것은 법에서 지정한 공사이기 때문에 서울시 측에서는 안타깝지만 어떤 지원도 해드릴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상인 대표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청계고가 보수공사가 시작되면 어차피 공사기간 동안 장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시민의 안전을 위한 고가 보수공사라는데 반대할 명분도 없었다. 또한 청계천 복원 사업은 서울시가 주장한 사업이기 때문에 어떤 수를 써서라도 기간 내에 마무리하려 노력하겠지만, 마지못해 하는 고가 보수공사는 2년 내에 끝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래서 어차피 생업에 지장을 받는 것이라면 3 년간 이주 및 업종 전환에 대한 지원을 받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고, 협상은 서울시가 원하는 대로 극적으로 타결됐다.

 

<출처 : 현재 청계천 사진, 국립생태원 블로그>


청계천 복원 사업 협상은 서울시가 상대에게 배트나를 적극적으로 알림으로써 목적을 달성했다. 서울시의 '고가 보수공사'라는 배트나가 별다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상인들에게 강력한 명분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것이 자칫 불가능해 보였던 협상을 가능하게 만든 배트나의 힘이다. 

협상을 하는 이유는 협상 없이 얻을 수 있는 결과보다 더 나은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이다.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협상 없이 얻을 수 있는 결과란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이 그 대안인가? (= 배트나는 무엇인가?) 이것이 제한된 합의안을 측정해줄 기준이다. 배트나란 매우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일 만한 유리한 조건을 거절하는 잘못을 막아줄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다. 이것이 '을'에게 더욱 배트나가 필요한 이유다.

당신이 만약 당신의 영향력이 상대방보다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의 동의와는 상관없이 지식, 시간, 돈, 사람, 연줄 등 가능한 모든 정보를 활용해 가능한 최선의 대안을 마련하는데 투자해야 한다. 당신의 배트나를 개발하고 개선하는 것만이 당신이 수용할 수 있는 최저의 합의를 높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배트나를 개발하는 것은 아마 겉보기에 당신보다 더 강력해 보이는 상대방을 다루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참고 자료>
협상의 신, 최철규, 한국경제신문, 2015
YES를 이끌어내 협상법, 로저 피셔, 윌리엄 유리, 브루스 패튼, 장락,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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