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이 한국과 협력을 원하는 이유, 그리고 동북아 패권의 새로운 질서
새로운 항로를 통한 한 · 러 동맹은 가속화 될 것인가
최근 러시아의 푸틴이 대한민국과 협력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이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세계 각국의 대사들 사이에서 한국만 콕 찝어서 우방의 표시를 했기 때문이다.
푸틴은 한국과 비슷한 지정학적 위치의 동아시아 국가인 일본은 개취급(푸틴은 아베와의 회담을 앞두고 정말 개를 데리고 나왔다)까지 할 정도로 강경론자로 유명하다. 하지만 한국에게 만큼은 호의적이다.
푸틴의 발언은 국제정치에서 대한민국을 놓치지 않겠다는 대외적 선언에 가깝다. 어째서 푸틴은 이 같은 외교전략을 펼칠까?
이건 항로의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 그리고 이건 미중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게도 특히 중요한 문제다.
패권과 항로
항로의 개척은 패권의 역사와 함께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향신료를 얻기 위해 신항로를 개척해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대항해시대는 중상주의의 서막을 알렸고, 이후 네덜란드를 지나 영국을 통해 산업혁명으로 이어진다.
바닷길은 곧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러왔다. 항로를 통해 무역이 활발해지고 상업이 발달하자 정신(르네상스, 종교혁명 등)과 기술(산업, 과학 혁명) 이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 또한 신항로의 수혜자였다.
항로를 개척하고 무역로를 장악한 국가는 곧 세계의 패권국으로 성장했다. 이렇게 제국을 세운 국가의 화폐는 기축통화가 되고, 무역항은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
근대에 들어 일본이 중국을 제치고 동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도 서양의 항로가 최종적으로 일본까지 도달했기 때문이다. 전국시대에 이미 무역항을 통해 서양과 교류하던 일본은 이후 근대화(메이지 유신)에 성공을 거둔 최초의 아시아 국가가 되었다.
패권이란 곧 항로의 지배력과도 같다. 최근 대만을 비롯한 남중국해의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는 이유도 결국 항로를 내어줄 수 없는 패권국들간의 힘이 충돌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관련 글 : 함포와 패권의 관계)
러시아를 통하는 신항로
최근 중국을 제외하고 가장 조선업이 가장 성장한 나라는 러시아다. 2020년 러시아의 선박 건조 증량은 54만 2000t으로 전년 대비 59% 증가했고, 선박 건조 금액은 2295억 루블로 전년 대비 67% 증가했다. 특히 2020년 건조 금액이 가장 높은 선박 분야는 화물선으로 전체 건조 금액의 47%를 차지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러시아가 화물선의 비중을 50% 가까이 늘린 것이다. 최근 러시아가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항을 차지했다고 해도 이를 포함해, 현재 러시아가 일 년 내내 사용할 수 있는 항구, 즉 부동항은 극동지역의 블라디보스크, 유럽지역의 칼리닌그라드 총 3개가 전부다. 러시아의 엄청난 영토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화물선을 건조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가 이렇게 화물선의 물량을 급속도로 늘리고 있는 이유는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2017년에 이미 쇄빙선의 도움 없이 화물선이 북극항로를 완주했으며, 2025년부터는 연중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인류의 위기인 기후변화가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에게는 기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제국의 부활?
러시아의 역사는 늘 부동항을 얻기 위한 과정이었다. 19세기 그레이트 게임이라 불리던 영국과 러시아의 패권 다툼도 부동항을 얻기 위한 러시아의 남진정책에서 비롯됐다. 1853년 크림전쟁부터 1904년 러일전쟁까지 러시아는 늘 부동항으로 향하는 길을 뚫기 위한 전쟁을 지속해왔다.
부동항이 없었던 러시아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바다로 뻗어 나가며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다. 결국 러시아인들에게 부동항의 확보는 러시아가 패권국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였던 것이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침공했던 배경도 세바스토폴항이라는 부동항을 얻기 위한 전략적 선택에 있었다. 세바스토폴항은 러시아가 유럽으로 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이자 일 년 내내 사용할 수 있는 부동항이다. 뿐만 아니라 지중해, 대서양, 인도양으로 접근해 유럽, 중동, 아프리카, 코카서스 지역에서 전략적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필수 군항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어떤 국가가 새로운 항로를 확보한다는 것은 패권에 한 발짝 가까워진다는 것을 뜻한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NATO 확장에 대한 방어를 빌미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푸틴은 언론을 통해 스스로를 표트르 대제와 비교했다.
신항로가 동아시아에 미치는 영향
새로운 기술과 혁신, 이념은 늘 신항로를 개척한 무역국가들을 중심으로 번영해 왔다. 그리고 역사는 이렇게 발전한 국가가 막대한 부와 무력을 통해 기존의 패권국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패권국으로 떠오르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이를 보면 최근까지도 러시아와 일본이 분쟁지역인 사할린과 쿠릴열도는 미래 가장 중요한 무역로를 지난다는 점에서 잠재적인 무력분쟁으로 까지 번질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 일본의 최장기 총리였던 아베 전 총리의 공약 중 하나는 러시아와의 영토 분쟁에서 승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가 평소 가장 존경하던 사람이라고 밝힌 사람은 요시다 쇼인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과 같은 사람. 우리에게는 '대동아공영권'의 사상적 체계를 만든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결국 아베와 푸틴의 높은 지지율은 표트르 대제와 요시다 쇼인으로 대표되는 두 제국주의의 망령이 지금까지 대립해오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럼 이번 북극항로의 개척이 한반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신항로가 개척되면 부산에서 베링해협을 거쳐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 이르는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된다.
이는 기존 항로인 수에즈 운하보다 거리가 30%나 줄어든 거리다. 현재 40일에 걸리는 거리를 신항로를 통하면 28일만에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즉 과거 일본이 무역항을 통해 패권의 길을 열었던 것처럼 한반도에도 엄청난 도약의 시대가 열리게 될지도 모르는 인류사적 사건인 것이다.
패권의 미래?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조선업이 발달한 나라 중 하나다. 또한 세계 무역의 중심(중국 상해와 함께 한국은 세계 경제의 카나리아로 불릴 정도로 국제적 무역 대국이다)일 뿐만 아니라, 4차 산업 혁명의 핵심인 전기차, 로봇 기술력도 매우 높은 나라다.
푸틴은 새롭게 형성될 무역로와 이를 바탕으로 한 패권경쟁을 위해 한반도, 특히 남한의 경제력과 기술, 그리고 결정적으로 무역항을 포기할 수 없다. (북극항이 열린다고 가정할 때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해지는 항구는 한국의 강릉항 내지는 부산항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디플레이션 현상은 제국의 꿈을 버리지 않는 러시아에게(그리고 한국에게도) 다시 없을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