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디지털 디자인', 본질에 대한 탐구를 통해 무차별의 벽을 넘는 것
잉기
·2019. 2. 19. 15:57
(본 글은 지난달 24일 저녁에 있었던 ‘&어워드’에서, LMNT컴퍼니 최장순 대표의 ‘디지털 시대, 뉴 디자인에 대하여’ 강의를 요약한 것입니다.)
디지털이란 무엇일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는 무엇일까?
오랜 기간동안 MIT미디어 랩의 수장을 맡았던 니콜라스 니그로폰테는 본인의 저서 『디지털이다』에서 디지털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에비앙 생수가 가득 찬 냉장고에서 하나를 꺼낸다고 생각해보라. 아날로그의 시대에는 꺼냈을 때 빈자리가 남지만 디지털의 시대에는 빈자리가 남지 않는다. 이제는 Atom의 시대가 아니라 Bit의 시대다.”
‘&어워드(Award for New Design)’, 이번 행사의 이름이다. 여기서 ‘&’의 상징적인 의미는 연결, 접속이다. 디지털의 시대, 비트의 시대에 연결이란 어떤 의미일까? 니체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은 ‘연결에의 의지’가 존재한다. 우리는 타인과 연결해야 한다는 신념이 존재하고 그런 신념은 스마트폰 중독을 낳는다. 그저 보이는 현상으로는 스마트폰 중독이지만 실제로는 ‘접속 중독, 연결 중독’인 것이다. 감히 ‘Homo Connecticus’라 불러도 될 정도이다.
인간(人間), 즉 사람 사이의 연결은 1대 1로는 연애, 우정으로 시작해 좀 더 범위를 넓혀왔다. 하지만 연결의 수는 점점 늘어나 그것이 주던 안도감을 넘어 현재는 정보 과잉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준다. 정보의 수만 많아진 것이 아니다. 정보는 수많은 유사한 정보 속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점점 강력하게 포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보를 접하는 우리에게 정보는 더 이상 효용이 아닌 스트레스다. TMI, Too Much Information의 줄임말인 이 신조어가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과도한 정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결해주기 위한 새로운 비즈니스가 생겼다. 이제는 돈을 주고 고요한 시공간을 산다. 보통 Premium이라 하면 무언가를 ‘더’ 주는 것을 생각한다. ‘Premium’이라는 단어는 과거 노예시장에서 더 건강한 노예를 선점하기 위해 얹어주는 웃돈에서 나왔다. ‘우대’의 의미인 것이다. 현재 과도한 정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대는 ‘더’ 주는 것이 아니라 ‘덜어’ 주는 것이다. 가장 단적인 예로 유튜브 프리미엄을 결제할 때 가장 우리가 고려하는 혜택이 바로 ‘Ad-free’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돈을 내면서 정보를 스크린 너머로 치워버리고 싶은 것이다. 고로 지금의 Premium은 Massive의 반댓말로 노이즈(과도한 정보)를 제거하고 침묵을 제공해주는 것이 되었다.
위 관점에서 보는 뉴 디지털 디자인은 ‘보다 상시적이고 높은 수준의 접속하에서 프리미엄(노이즈를 제거)한 비트를 디자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높은 수준의 사용성, 직관성뿐만 아니라 심미성까지 갖춰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이 뉴 디지털 디자인이라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사실 만든다 해도 ‘우리만의 것’을 만들기가 쉽지는 않다. 스마트폰 앱 서비스를 자세히 보신 분이라면 깨달을 것이다. 꽤나 UI/UX디자인이 잘 되어있다는 서비스들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과도한 정보 속에서 우리는 결국 무차별을 향해 노력하는 셈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어떻게 고유한 색깔을 찾을 수 있을까? 답이 있다면 고유의 상(象)을 갖는 것이다. 다음의 그림을 보자.
위 이미지는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이다. 당신은 이 그림을 보면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누군가가 떠오를 수도, 미술 지식이 있는 사람은 르네 마그리트와 동시대 화가들을 떠올릴 수도, 머리 아픈 걸 좋아하는 분이라면 『언어적 표상과 세계』라는 논문을 남긴 비트겐슈타인을 떠올릴 수도 있다. 이렇게 우리는 각자의 기호나 배경지식에 따라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표현, 재현, 상징, 기호를 떠올린다.
기업의 문제로 다시 돌아와보자. 기업이 브랜딩/마케팅/디자인에 대해서 갖는 문제들은 다음의 7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 Target : 해석의 주체는 누구인가?
- Research :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싶은가?
- Positioning : 그 의미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실체는 무엇인가?
- BX(Verbal/Visual) Design : 어떻게 표현해낼 것인가?
- Communication : 고객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 UX Design : 어떻게 고객을 더 편하게 할 것인가?
- Tracking : 어떻게 추적할 것인가?
이 7가지를 하나로 묶으면 “내가 던지는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된다. 실무자들은 “그래서 어떻게 팔 건데? 가성비의 시대야~ 가격이 제일 중요한데 본질 얘기해서 뭐해?”라고 되물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미의 세계에는 가격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임마누엘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내용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라고 했다.
표현에 대한 의미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의 합의를 위한 디자인을 해야한다. 한 쪽이 ‘의미, 전략이 있는 Creative’를 생각하면 나머지 한 쪽에서는 ‘Creative를 고려한 의미와 전략’을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Brand Semiotics’, 즉 우리는 브랜드의 기호를 남겨야 한다. 가격은 그 기호를 이루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Apple은 Simple Design이라는 통로로 Innovation, Trendy등의 다양한 'Brand Semiotics'를 남겼다>
서양(근대)철학사는 크게 다음의 4가지 학파(실존주의, 공리주의, 비판주의, 쾌락주의)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그 학파에 해당되는 사람을 우리는 실존주의자, 실용주의자, 비평가, 미학가라 부른다. 한 사람이라도 어떤 것에 대해서는 실용주의자적인 모습을 보이다가도 어떤 것에는 미학가적인 모습을 보이기에 “너는 ~야”라고 규정할 수 없으나 크게 나누어보면 다음의 이미지와 같다.
어떤 것을 처음 접한 호모 사피엔스들은 대개 1사분면(우측 상단)에 위치한다. 지금도 우리는 새로 우주기술이 개발되면 화성여행에 대한 꿈을 꾸고 지구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가길 원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점차 2사분면(좌측 상단)으로 변화한다. 그런 꿈들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고 그저 공상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좀 더 지나면 우리는 그 중 유용하고,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들만 채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맨 나중에는 4사분면으로 이동해 그저 우리에게 자극이 되는 것들만 채택한다. 우리가 오래된 것들에 대해서는 꿈, 공상, 경제적인 것들을 무시하고 ‘소확행’을 추구하는 것들도 비슷한 맥락이라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이렇게 시대에 따라 변하기에 우리는 업의 본질, 디자인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다음의 예시에서 다시 한 번 니체의 표현을 빌려 ‘의미의 계보’를 따라가 보자.
‘사과’는 서양역사에 있어서 ‘지성’을 대표하는 매개물이다. 스피노자는 말한적이 없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 부터. 뉴턴 만유인력의 발견, 그리고 천재 수학자, 컴퓨터학자인 앨런튜링의 독사과 자살과 그를 형상화한 애플의 로고까지. 이런 사과의 상징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런 본질적인 이야기를 탐구함에서 우리는 그 상징의 본질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본질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플라톤 『국가』에 언급되는 '소크라테스의 동굴'을 보자. 동굴 안에 갇힌 사람들은 그저 흑백에 불과한 형상의 그림자만 볼 뿐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그 동굴의 벽을 넘어 물체의 색을 인지하고, 태양에 다다를 수록 이전 동굴에서 보던 것과 다른 차원의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그 태양에서 나온 빛이 물체에서 반사되어 우리의 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동굴안에 존재하는 벽을 넘고 동굴 밖을 나가 태양을 보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애플의 ‘1984’광고를 보라. 스크린을 향해 달려나가는 유일한 컬러의 사람은 스크린에 매여있어 본질을 보지 못하는 흑백의 사람들에게 망치를 던져 스크린을 깨는 역할을 한다.
우리도 본질을 보려면 망치를 던져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우리가 기업의 또는 자신만의 고유의 상을 가지고자 한다면, 보이는 것만 보는 고정관념을 깨고 본질을 향한 탐구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남들과 같은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라는 무차별성을 넘어 하나뿐인 본질을 시대에 맞게, 또 기업에 맞게 그리고 자신에 맞게 풀어낸다면 우리 자신만의 고유의 상(象)인 진정한 '뉴 디지털 디자인'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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