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 높은 사회는 정말 도덕적일까?

M.동방불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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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1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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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지능이 아니라 기능이다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아담 스미스'는 저서인 <도덕 감정론>에서 공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어떤 무기가 타인의 다리나 팔에 겨누어지고 막 타격이 가해지려는 광경을 본 경우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다리나 팔을 움츠리거나 뒤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실제로 그 타격이 가해지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어느 정도 그것을 느끼고 상처를 입는다."


아담 스미스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이 느끼는 감정, 즉 공감을 같이 공유하는 존재라는 것이다.(책에서 사용한 'sympathy'라는 단어는 '동감', '공감', '동조'의 의미를 갖고 있지만 현대적 의미의 공감과 맥락 상 일치하므로 여기선 '공감'이라는 단어로 통일)


일반적으로 우리는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을 도덕적이고 양심적이라 평가한다. 'sympathy', 'sympathize'라는 단어의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 공감은 '동정', '연민'으로 대표되는 일종의 '덕성(德性)'과 같은 윤리적 개념을 포함하고 있으며 공감 능력이 높은 사회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도덕적인 지향점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건 공감에 대한 한쪽 측면(주로 긍정적인 부분)을 강조해서 나타난 현상으로 공감이 정말로 사회를 정의롭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공감이란 타인의 감정을 공유하는 뇌의 기능적 작용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느끼도록 진화하지 않았다.(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머리는 넘쳐나는 정보에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계속해서 전쟁이나 재난이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눈앞의 일이 아니면 이런 사건들에 일일이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이건 인간의 뇌가 효율성(cost-effective)을 최우선 순위로 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감이라 불리는 감정은 윤리적 기준이 아니라 주관적 기준으로 작동한다. 
※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이유는 우리 뇌가 더 가까운 사건을 중요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를 말할 때 '공정함'이라는 가치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사적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는 대체로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다. 심리학자 조지 로벤스타인과 데보라 스몰의 연구는 우리의 공감능력이 얼마나 편향된 행동을 만들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연구원들은 실험에서 재난 상황을 가정하고, A 집단에게는 글자와 숫자로 된 정보만을 제공했고, B 집단에겐 재난을 겪고 있는 인물의 이름과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그리고 두 집단 사이의 기부금 금액을 확인했다.


결과는 큰 차이를 보여줬다. 특정 인물에 집중한 B 집단의 모집 금액이 사건의 정보만 전달한 A 집단보다 무려 두 배가 넘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여러 실험에서 인간은 동일한 사건을 두고도 정서적으로 더 교감하는 정도에 따라 매우 편파적으로 행동했다.


자선 기업이 극빈층 아이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거나 환경보호 단체가 기름 범벅이 된 갈매기의 사진을 집중해서 보여주는 것은 실제로 수치화된 정보를 보여주는 것보다 개인적인 사건에 집중했을 때 더 높은 기부 금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디어는 인간의 이런 불완전한 공감 능력을 적극 활용한다. 문제는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정보를 (편집자가 의도한 방향으로) 편향되게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높은 공감력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력이다  [자료 : TVN 알쓸신잡2]


이런 측면에서 보면, 공감이 높은 사회가 도덕적이고 호혜적일 것이라는 주장은 납득하기 힘들다. 심리학자인 '폴 블룸'은 여러 연구를 통해 더 높은 공통의 감정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훨씬 비윤리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강한 연대감을 가지는 조직, 예를 들어 특정 축구팀을 응원하는 서포터들의 뇌를 측정해보면 자신과 같은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에겐 높은 공감 능력을 보여주지만, 반대로 타 구단 서포터에게는 일반적인 집단보다도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심지어 이들은 폭력이나 방화, 심한 경우에 살인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는데 이건 공감 능력이 높은 사회가 꼭 도덕적일 수 있다는 통념과는 상반된 결과였다.


※ 공감 능력과 범죄의 연관성을 나타낼 때 자주 언급되는 것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다. 그러나 통계에 따르면 이들의 범죄율은 공감 능력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범죄율에 실제 영향을 미친 것은 충동성과 폭력 전과의 기록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공감이라는 감정에 너무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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