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생태계, 중국을 타산지석으로
잉기
·2019. 4. 16. 11:14
중국의 사례로 바라본 우리나라의 스타트업
중국의 창업 열기는 세계적이다. 2017년 중국 내 신설 기업의 개수는 607만 개, 이는 하루 평균 약 16,600개의 기업이 신설되었다는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대학 졸업자 중 창업자의 비율이 1% 내외인데 비해 중국은 8%가 창업에 도전하고 있다. 중국이 이렇게 높은 창업 열기를 자랑하는 이유에는 무엇이 있을까?
좋은 롤모델 기업들의 성장
중국인들이 창업에 대해 가지는 인식은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매우 좋다. GEM(Global Entrepreneurship Monitor)에서 2018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창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 항목에서 총 54개국 중 한국이 21위를 기록한데 비해 중국은 무려 8위를 차지하였다. 중국인들이 창업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갖게 된 것은 앞서가는 롤모델 기업들의 영향이 크다.
먼저 BAT라 불리며 2000년대 중국의 성장을 이끌어온 인터넷 기업들이 있다. 중국의 구글이라 불리는 바이두(Baidu), 전자상거래를 주도하고 있는 알리바바(Alibaba)와 메신저를 장악한 텐센트(Tencent)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현재 중국은 물론 전 세계 시가총액에서도 상위권에 올라있으며 단순히 인터넷을 넘어 핀테크, 금융, 게임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며 중국의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 이 기업들의 창업가인 리옌훙, 마윈, 마화텅 역시 창업가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고 있다.
많은 유니콘 기업도 창업 롤모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100개가 넘는 유니콘 기업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실리콘 밸리가 있는 미국보다 많다. 중국의 유니콘 기업은 단순히 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그 규모도 거대하다.
알리바바그룹 홀딩스의 계열사인 앤트 파이낸셜(Ant financial)은 1,500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자랑하며 전 세계 유니콘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틱톡(Tik-Tok)으로 국내에도 친숙한 바이트댄스(Bytedance)가 780억 달러로 2위, 중국의 Uber라 불리는 차량 공유 서비스 디디추싱(Didi Chuxing)을 운영하는 디디(Didi)가 560억 달러로 4위에 올라 그 뒤를 잇고 있다. (참고로 3위는 미국의 Uber이다. 기업가치 72억) 그리고 작년에 IPO(기업공개)를 한 샤오미, 메이퇀디엔핑 같은 기업들도 중국 창업가들의 길잡이로 한몫을 하고 있다.
정부와 민간이 합작하여 성공적인 창업 인프라 구축
2015년 3월 15일 있었던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리커창 총리는 “대중창업, 만중창신(大衆創業, 萬衆創新)”을 강조하며 정부가 앞으로 창업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성장을 위한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에 힘쓸 것을 발표하였다.
그 결과 스타트업의 탄생과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플랫폼인 ‘중창공간(衆創空間)’이 만들어졌다. 중창공간은 2017년 말을 기준으로 중국 전역에 약 5,700개 이상이 있으며, 단순히 사무공간이 아니라 혁신기술 서비스와 자금 지원, 교육, 멘토링, 네트워크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중창공간의 성장에 힘입어 2017년 공간 내에 신규 등록된 기업들의 수는 약 8만 7천 개에 이른다.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텐센트와 바이두가 창업공간을 지원하고 있고 중국 내 공유 오피스 유니콘 기업인 Ucommune도 중국 곳곳에 거대한 중창공간을 만들고 있다.
창업하는 분야도 도시마다 다르게 분포되어 있다. 베이징은 AI, 블록체인 및 에듀테크가 주를 이룬다. 상하이는 핀테크와 게임이, 선전은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하는 스타트업이 많다. 이들은 자국 내에서의 연계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투자 인프라도 눈여겨볼 만하다. 중국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투자금을 주도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민간의 투자 비율도 무시할 수 없다. 민간 투자의 선두에는 역시 앞서 언급했던 BAT가 있다. 텐센트는 300여 개, 바이두는 150여 개의 스타트업에 투자를 결정하였고 이들이 참여하는 투자 건수는 전체의 70% 정도다. 이들은 투자기업에 단순히 금전적인 지원을 넘어서 자신의 플랫폼 내에서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커다란 내수시장
중국은 14억 명 이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국가이다. 이에 따른 중국의 커다란 내수시장 크기는 자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실제 2016년의 중국 내수시장의 크기는 한국의 8.2 배에 달한다. 이에 따라 중국 스타트업은 자국 내에서 만으로도 충분한 마켓 사이즈를 확보할 수 있다.
커다란 내수시장의 장점은 단순히 자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에 따라 데이터의 수집은 스타트업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중국의 스타트업은 많은 데이터를 상대적으로 쉽게 획득할 수 있는데 이런 환경은 중국 스타트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스타트업도 차이나 버블
하지만 이런 성장에는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년간 급속한 성장을 이룬 중국의 창업 생태계는 최근 부작용을 치르는 중이다. 작년 말에 있었던 오포(ofo)의 파산이 대표적이다. 오포는 중국 내 공유 자전거 업체로 2015년에 사업을 개시한 이래로 3년 만에 중국은 물론 유럽과 미국까지 서비스 지역을 확장했다.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확장 때문에 자금난에 시달리며 해외 사업을 하나씩 줄여나가야 했고 급기야는 자국 사업까지 감당해내지 못하며 파산을 신청했다. 성장통을 겪으면서 투자 열기도 수그러들었다. 올해 1월의 벤처 투자액은 43억으로 작년 동기간에 비교하면 약 70%나 감소하였다.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크게 세 가지를 꼽아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단편적인 사업 아이디어의 문어발식 확장이다. 부동산 정보제공 업체인 아이우지우는 내부적인 상태와 사업의 맥을 고려하지 않고 금융과 인터넷으로 확장한 결과 기업 청산 절차를 밟는 지경에 이르렀다.
두 번째는 내수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 스타트업이 글로벌 시장 진출을 하면서 많은 부분을 고려하지 않게 만들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중국 정부의 규제다. 오포의 경우 규제 때문에 자전거 차체에 직접적으로 광고를 표시할 수 없었고 이것 때문에 수익모델이 제한되었던 것도 오포가 파산한 이유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리고 세계 최대의 게임회사이기도 한 텐센트의 경우 중국의 게임 규제에 따라 시가총액이 큰 폭으로 변동하는 등 정부의 강력한 규제는 중국 스타트업의 성장 방해요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국내 창업 생태계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앞서 중국이 가졌던 문제점에서 그 해답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규제혁신이다. 한국의 창업 인프라 자체는 중국에 뒤지지 않는다. 2019년의 정부 창업지원사업의 규모는 1조 1,180억 원으로 창업 시장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규제가 스타트업들의 발목을 잡는 것도 중국과 같다. 앞서 언급했던 GEM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규제 인프라 부문에서 한국은 54개국 중 45등으로 하위권에 속해있다. 국내에서도 규제 개혁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올해부터 ‘규제 샌드박스’를 신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주요 선진국보다 시작 시기가 늦은 만큼 속도를 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스타트업 생태계 내부에서도 무리한 사업 확장을 자제하는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 내수시장이 작은 탓에 회사의 외적인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 무리한 행보를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스타트업 군단이자 원조 유니콘이라 불리던 옐로모바일의 몰락이 그 예시다. 옐로모바일 아래에 M&A를 통해 스타트업이 모여들며 빠르게 성장했고 그들 간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며 투자자들에게 많은 투자금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내부 자금 상황의 악화로 추가적인 자금 유치에 실패하며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다. 창업자들은 이런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여러 사업에 다리를 걸치기보다는 좁은 영역이라도 경쟁력을 확보하여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 사이즈를 키우려는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이를 위해 눈여겨보아야 할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인구 대비 창업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다.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은 내수시장이 작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 진출을 전제로 경쟁력 있는 기술을 개발해나가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도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과거부터 민간자본 중심의 요즈마 펀드를 설립하고 규제개혁을 시행해왔다. 그리고 단순히 기업에 대한 지원을 넘어 군대, 대학 등이 연계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며 ‘후츠파(Chutzpah)’라 불리는 도전정신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하였다. 물론 이스라엘의 정책들을 국내에 그대로 갖다 불일 수는 없겠지만, 상황을 고려하여 발 빠르게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영국 런던 정경대학의 졸탄 액스 교수는 앙트레프레너의 역할에 대해 “빵을 부풀어 오르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경제 성장을 만드는 것은 밀가루나 설탕이 아닌 효모입니다. 그게 바로 앙트레프레너(Entreprenuer)죠.“라고 말한다.
앙트레프레너가 경제발전에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 사실이라도 그것만 있다고 경제가 발전하지는 않는다. 빵이 부풀기 위해서는 밀가루, 설탕, 효모 외에도 적절한 온도와 같은 요소가 필요하듯 앙트레프레너가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환경적 요인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중국의 사례를 거울로 삼아 좋은 점은 본받고 문제점은 국내 환경에 맞게 개선하여 앙트레프레너가 더 많이 탄생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한국금융연구원, 주간금융브리프 27권 13호, 2018, p.23, 중국 스타트업의 최근 최근 동향과 발전 환경
김영현, “중국 대학생 창업 열기 ‘후끈’ … 한국보다 10배 뜨겁다”, 연합뉴스, 2017.08.16
Wikipedia, List of unicorn startup companies, 2019.04.14,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unicorn_startup_companies
이슬기, 「중국의 중창공간을 중심으로 중국 창업지원 동향」, 정보통신정책연구원, 2018, p,26, 28
「Global Startup Ecosystem Report 2018」, Startup Genome, 2018, p.191, 202~203
손요한, “중국 유니콘 기업의 공통점 4가지”, 플래텀, 2019.02.22
오광진, “세계 2위 수입시장의 허와 실… 소비주도 경제로 전환, 잘 될까”, 조선일보, 2018.08.23
조진형, “벌써 거품 꺼졌나… 위기 놓인 중국 스타트업”, 중앙일보, 2019.04.08
이석원, “올해 정부 창업지원사업 ‘1조 1,180억원 규모’”, 벤처스퀘어, 2019.01.02
「GEM 2018/2019 Global Report」, Global Entrepreneurship Monitor, p.99
「앙트레프레너, 경제강국의 비밀 1부」, EBS,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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