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는 구별할 수 있는가?

P. 동방불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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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2. 2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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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과 가짜 뉴스, 그리고 진실에 대하여

 

과거 미디어 권력에 대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그때 한 청중이 이런 질문을 했다.
“가짜 뉴스는 어떻게 구별하나요?”

 

잘난 척 강의를 해놓고도, 당시 나는 그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과거 사건을 기록하는 일은 ‘사관(史官)’의 몫이었다. 사관이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그 역할은 언론이 대신한다.  그런 의미에서 뉴스란 곧 역사다.

 

그렇다면 역사란 무엇인가.  기록은 과연 어디까지 객관적일 수 있는가.


거장인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에는 살인 사건에 연루된 세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은 동일한 사건을 겪고도 판관 앞에서 전혀 다른 진술을 한다. 여기에 목격자까지 가세하면서 사건은 점점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영화는 끝내 ‘진실’을 밝히지 않은 채 막을 내린다.

 

심판관 앞에서 모두 다른 증언을 하는 주인공들, 출처 : 구로사와 아키라, <라쇼몽> 스틸컷


구로사와는 이 작품을 통해 묻는다.
'인간은 과연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존재인가.'

 

이 문제의식은 역사학자 E.H. 카가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관을 비판하며 던졌던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역사는 사실의 단순한 집적이 아니라, 선택과 해석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짜 뉴스’란 무엇일까. 아니, 애초에 그런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전 공화당 하원의원이었던 대럴 아이사의 전 언론 담당 비서 커트 바델라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보기에 언론은 지독히 게으르다. (그들은)내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글자 그대로 실을 때도 있다. (…)
대중은 쉬운 기사를 선택하고, 기자는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나쁜 일이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그는 뉴스가 사실을 말하기에는 언론과 대중 모두가 너무 게으르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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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한국 신문론>이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꽤나 지루한 수업이었지만, 단 하나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국내 주요 신문사와 방송사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기득권의 편에 서서 뉴스를 생산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자료였다.


교수님은 세부적인 도표를 하나하나 짚으며, 권력과 언론의 관계를 절대 잊지 말라고 강조하셨다. 그 수업 이후로 나는 미디어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결코 믿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사실이 무엇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미디어란 결국 누군가가 하고 싶은 말을 담아내는 그릇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언론뿐 아니라 유튜브와 SNS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목소리들 역시 각자의 관점에서 모두 ‘사실’이다. 그 안에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가짜 뉴스는 없다.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주체는 언제나 뉴스를 읽는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뉴스는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관점으로 읽혀야 한다. 우리는 무책임한 사관이 남긴 기록에 그대로 기대어 살아갈 수 없다.


결국 우리가 해야할 질문은 ‘가짜 뉴스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가 아니다. 우리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어떻게 뉴스를 읽어야 하는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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