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공교육 시스템이 만들고 있는 노예 사회

P. 동방불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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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2. 2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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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노력할수록 가난해지는 이유

 

'정의롭게 살아라. 선이 악을 이긴다'

'공부 열심히 해라. 좋은대학 가라'

'절약해라. 저축해라'

'질서에 순응하라.''

...

..

 

이런 말들은 우리가 초, , 고교를 거치며 지난 10년이 넘게 반복적으로 주입받았던 것들이다. 그런데 학교를 나오고 경험한 세상은 뭔가 다르다.

 

저축만 해서는 집 한채 사기도 힘들고, 사회 요직에 있는 사람들은 정직함이나 성실함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주변을 보면 가장 부유한 사람들은 공부를 잘하거나 명문대에 진학한 사람이 아니다.

"현재의 공교육은 학생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살아남기 위한 지식을 가르치지 않고 있으며, 세상의 진실을 반영하지도 않고 있다."

 

<지금까지 없던 세상>의 저자인 이민주 소장이 국내 교육 제도를 비판하며 적은 글이다. 그리고 그는 심지어 공교육이 개성이 말살된 노예같은 인간을 만들기 위한 제도라고 주장한다.

"공교육에서 가르치는 내용의 최종 목적은 단지 고용사회에 순응하는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말은 사실일까? 실제로 미국 28대 대통령이자 현대 행정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우드로 윌슨은 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진보적인 교육은 한 학급으로 족하다. 이런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학생들에게 진보적인 교육을 받는 특권을 줄 마땅한 이유가 없다.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특정 분야마다 제각각 힘들고 어려운 노동을 수행할 수 있는 노동력을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윌슨의 말대로 라면 근대의 교육제도는 개인의 삶을 더욱 자유롭고 개성있게 만드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근대 교육의 목적은 산업시설에 필요한 노동력, '표준화'된 자원의 공급이다.

 

산업화 이후 근대의 국가들은 (도시화와 함께)농경 사회와는 다른 새로운 노동력이 필요해졌다. 도제식 교육과 다르게 다수에게 획일회된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을 택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공교육은 국가에 이바지할 노동력 생산이라는 사명을 갖고 만들어졌다.

 

자연과 계절의 법칙에 따르던 사람들의 삶은 공장과 기계의 스케쥴에 맞춰졌다. 해가 뜨는 시간에 일어나 농지로 나가는 대신에 기계가 돌아가는 시간에 맞춰 기상시간과 출퇴근 시간이 정해졌다. 50분 수업, 10분 휴식이라는 공식도 이때 만들어졌다. 학교와 직장이 닮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래학자인 엘빈 토플러는 저서인 <미래쇼크>를 통해 1970년대에 이미 미국의 산업과 교육의 완벽한 연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대중교육은 산업주의가 필요로 하는 유형의 성인을 길러 내기 위해 만들어 낸 독특한 제도였다. 문제는 매우 복잡했다. 새로운 세계, 즉 반복적인 실내노동, 연기, 소음, 기계, 밀집된 생활조건, 집단적 규율, 그리고 해와 달의 주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장의 사이렌과 시계에 의해 시간이 규정되는 어린이들을 어떻게 사전 적응시키느냐가 문제였다."

 

그는 산업화에 어울리는 정제된 인간을 만들기 위해 정부는 공장과 똑 닮은 기관을 발명했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일반학교다.

"해결책은 그 구조 자체가 이러한 새로운 세계를 모방한 교육제도였다. (...)이처럼 학교 내부의 생활은 산업사회를 미리 알려 주는 거울, 완벽한 전주곡이 되었다. 편제화, 개성화의 결핍, 착석배치등급사정채점 등의 경직된 제도, 교사의 권위주의적 역할 등 오늘날 가장 비판받고 있는 교육의 특징들이 바로 대중적 공교육을 그 장소와 시대에 알맞은 효과적 적응수단으로 만들었다."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공장에 필요한 노동력을 충원하기에 공교육은 최고의 시스템이었다. 기업가들은 학교에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학교는 그 돈으로 노동자들을 교육했다. 그렇게 양산된 노동자들은 다시 공장으로 보내졌다. 이 훌륭한 시스템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다.

 

경영 사상가인 세스 고딘은 한발 더 나아가 교육제도가 국민을 자발적으로 기업과 정부에 협조적인 노동자로 만드는, 즉 현대의 노예제도라고 보았다. 정부와 기업가가 만들어낸 시스템에서 자율성을 상실한 부품과 같은 인간이 나온다고 본 것이다.

"교육제도의 모형은 단순하다. 훈승하는 노동자를 생산하는 것이다. 생산성이 높아야 하고, 노동자를 양산해야 한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거대한 산학 복합체를 구축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기업에 협조하고 열심히 일하도록 가르치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다."

 

그럼 공장의 피고용인이 되어 시키는 대로 사는 삶에 만족하도록 수많은 사람들을 세뇌하는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바로 불확실성이 제거된 고정된 급여다. 공장일은 마치 보너스처럼 연금과 안정적 직업, 건강보험과 같은 다양한 혜택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해소와 적절한 보상이 마약처럼 작용했던 것이다. 이런 시스템에 귀속된 개인의 정신은 노예와 다를 것이 없다.

"독재자가 명령하는 대로 무조건 삽질하는 겁쟁이 시민들처럼,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확실성'을 얻는 대가로 자신의 자유와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이후 교육혁명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던 피터 드러커조차(피터 드러커는 근대의 공교육을 '교육혁명'이라 평가했다.)기존의 교육제도가 갖고 있는 한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통적 학교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전과목 A학점을 받는 학생]은 전반적으로 평범한 기준에 꼭 맞는 학생들이다. 그들은 성취하는 학생이 아니다. 그저 순응을 잘하는 학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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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관한 이 온갖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학교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기보다는 죽어가는 제도를 향해 뒷걸음질치고 있다. 학교의 방대한 에너지는 '산업화 인간(Industrial Man)', 즉 그들이 살아있을 동안에 쓸모없게 될 제도 속에서 생존하도록 훈련된 사람들을 생산해 내는 데 활용되고 있다. 미래 쇼크를 피하려면 우리는 초 산업주의적 교육제도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과거보다는 미래에서 우리의 목표와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 엘빈 토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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