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협상법 '익스플로딩 오퍼(Exploding offer)'란?

M.동방불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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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2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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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제압하면 이용하면 갑과 을이 뒤바뀐다

 

경영학에 20 대 80의 법칙이 있다면, 협상학에는 10 대 90의 법칙이 있다. 협상의 마지막 10% 시간에 90%의 합의가 이뤄진다는 뜻이다. 과거 한국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벌일 당시, 이 과정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은 실패를 예상했다. 그 이유는 쌀, 자동차, 쇠고기, 섬유 등 정작 중요한 안건은 7차 협상이 진행될 때까지 언급조차 안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8차 협상에서 몇 번의 마감시한 연장을 거치며 한미 FTA는 극적으로 타결됐다. 이것이 협상학에서 말하는 10 대 90의 법칙이다.

 

협상 전문가들은 이처럼 협상의 막바지에 민감한 주제가 많이 논의되는 만큼, 마무리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협상 당사자들은 협상이 막바지로 향할수록 '끝내야 한다'라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때문에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한 협상가는 종종 중요한 안건임에도 큰 고민 없이 양보를 해버리고 만다. 계약서에 서명을 하게 되는 순간까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는 것이다. 협상 전문가 허브 코헨은 1980년에 발표한 베스트셀러 '협상의 법칙'에서 자기가 처음으로 맡은 중대 사업 계약 건으로 공급업체와 협상하기 위해 일본에 갔던 일화를 들려준다. 허브 코헨이 경험한 다음의 내용은 협상에서 '시간'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두 일본인이 나에게 말했다.'원하신다면 저희들이 이 차로 모셔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속으로 '참으로 배려가 깊은 사람이들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머니를 뒤져서 항공표를 꺼내 그들에게 건네주었다. 리무진이 언제 와야 할지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내가 그때 미쳐 깨닫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해서 나의 마감시간을 알게 되었고, 반면 나는 그들의 마감시한을 모르고 있었다. 협상이 곧바로 시작되는 대신 그들은 내게 일본인의 친절함과 문화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1주일이 넘게 나는 황궁에서 도쿄의 사원까지 그 나라를 여행했다. 심지어 그들은 나를 '선禪' 교실 영어 코스에 등록시켜 그들의 종교까지도 알게 했다. 내가 협상할 뜻을 비출 때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직 시간이 충분합니다.'

 

결국 12일이 지난 후에야 협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첫 협상도 골프를 치기 위해 일찍 끝났다. 13일째 되던 날, 다시 협상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환송 만찬 때문에 일찍 끝났다. 마침내 14일째 되는 날 아침 우리는 진지하게 협상을 재개했다. 협상이 아주 중요한 대목에 이르려는 순간 나를 공항까지 데려다줄 리무진이 도착했다. 우리는 모두 차에 타고난 다음 거래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차가 터미널에 도착해서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거래는 끝이 나고 말았다."

 

이 협상을 두고 허브 코헨은 상사들에게 두고두고 놀림감이 되었다고 한다. 코헨은 "그들은 내 마감 기한을 알고 있었고 나는 그들의 마감 기한을 몰랐다." 라고 말하면서 그가 갖고 있지 않은 무기를 상대에게 쥐여줬다는 점에서 협상이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말한다. 어떤 협상에서든 시간은 가장 중대한 변수 중 하나다. 마감 기한의 설정은 모든 협상을 마무리로 몰아넣는 압박으로 작용한다. 마감에 쫓길 때 우리는 대게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결과에 반하는 일을 억지로 하게 된다. 인간은 모두 마감이 다가오면 서두르게 되는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왜 마감이 다가오면 불안을 느낄까? 특점 시점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뇌리에 떠오르는 가상의 미래 시나리오에서 '이 협상은 끝이야!'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면서 향후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고 인식한다. 우리는 보통 얻은 것의 가치보다 잃어버린 것의 가치를 더 크게 평가한다고 한다. 상상해보자. 당신이 1만 원을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상실감과 1만 원을 선물 받았을 때 느끼는 행복감 중 어느 것이 더 크게 느껴지는가? 연구에 따르면 잃어버린 것의 무게는 같은 크기로 얻은 것보다 정서적으로 약 두 배나 더 무겁다고 한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손실 회피(Loss aversion)'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결정을 할 때 시간에 쫓기게 되면 '손실 회피'적 성향이 발동하면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데 장애가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손실 회피'를 활용한 심리전략은 다양한 협상 상황에서 벌어진다. 당신이 회사에 필요한 제품을 수주하기 위한 거래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거래처 영업부 담당직원이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희가 꼭 납품하고 싶습니다. 저희랑 하시면 가격은 10퍼센트 할인해드리고,배송도 저희가 무료로 해드리겠습니다. 또 A/S 기간도 1년 연장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그런데 정말 죄송하지만 이번주까지 결정을 해주셔야만 세 가지 모두를 해드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다음 주부터는 저희 배송차량의 일정이 꽉 차 있어 무료 배송은 다음 주까지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수한 협상가는 '시간'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협상의 주도권을 가져온다. 여기서 영업부 직원은 상대방에게 짧은 기한을 주고,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존의 제안을 철회한다고 하면서 상대방을 압박하고 있는데, 이를 협상 용어로 '익스플로딩 오퍼(Exploding offer)'라 한다. 시간을 활용한 전략은 적절히만 사용한다면 위의 사례처럼 갑과 을의 주도권이 뒤바뀌게 만들 수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테러범이 인질을 납치했을 때도 마감시한에 따라 패턴화된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위기 협상 전문가 크리스 보스와 탈 라즈는 자신들이 FBI에 소속되어 있을 때 아이티 인질범들의 두 가지 패턴을 알아냈다고 한다. 첫째, 특히 월요일에 납치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 둘째, 납치범 패거리들은 주말이 다가올수록 몸값을 받고 싶어서 안달을 냈다. 위기 협상팀은 여러 정황을 고려하여 패턴을 분석하였더니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인질범들은 금요일까지 몸값을 받아 주말 동안 파티를 벌이기 위한 지극히 단순한 동기를 갖고 움직인다.'

 

크리스 보스는 이들의 심리를 이용해 일부러 주말 직전까지 협상을 질질 끌어 인질범들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마감을 이용한 작전은 인질들의 몸값을 크게 낮출 수 있었고, 주도권을 확보한 협상팀은 훨씬 효과적으로 인질을 구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협상에 있어서 마감은 마치 도깨비처럼 아무런 정당한 이유 없이 불필요하게 불안을 초래한다. 만약 당신이 협상 시 시간에 쫓겨 심한 압박을 받아 올바른 선택을 내리기 힘들다면 차라리 협상을 포기하라. 잘못된 협상보다는 협상 결렬이 낫다. 그러나 당신이 마감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믿기 시작하면 인내심은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상대방은 항상 시간 제약을 받고 있게 마련이다."

 - 허브 코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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